폐쇄된 실험실, 내쫓긴 학자들…상하이 의학 연구소에서 무슨 일 생겼나

한동훈
2020년 03월 5일 오전 11:17 업데이트: 2020년 03월 5일 오후 12:18

지난달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상하이 공공위생 임상센터의 한 실험실이 지난 1월12일 중국 당국에 의해 폐쇄됐다. ‘교정(rectification)’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 이면에는 세계 최초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게놈(genome·유전체) 서열을 분석해내고 그 위험성을 국제사회와 대중에게 알리려 했던 한 연구자의 양심과 땀이 묵살당한 비극적 스토리가 얽혀 있었다.

상하이 공공위생 임상센터의 장융전(張永貞) 교수 연구팀은 지난 1월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게놈(genome·유전체) 서열을 분석하고 사스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세계 최초로 이룬 쾌거였다. 동시에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바이러스 위험성을 조기에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장 교수팀은 샘플을 채취한 환자 상태가 심각하고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나온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각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연구 결과를 보고하고, “적절한 확산방지 조처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중국은 곧 수억 인구가 이동하는 대명절인 춘절(春節, 설) 연휴가 다가오고 있었다.

SCMP와 인터뷰에서 장 교수팀과 가까운 한 소식통은 “그건 개인의 명예욕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인구 대이동을 앞두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호흡기 질환에 대비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사스 재앙을 호되게 치렀던 중국인들이었다. 호흡기 감염증의 무서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상하이 공공위생 임상센터 | 홈페이지

그러나 닷새가 지나도록 국가건강위생위원회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장 교수 연구팀은 정부가 대중에게 바이러스에 대해 경고할 의도가 없음을 간파했다. 학자적 양심에 따라, 장 교수는 1월 1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게놈 서열 분석 결과를 국제적인 바이러스학 연구토론 사이트인 바이롤로지칼(virological.org)에 공개했다. 중국 당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제사회에 알린 것이다. 또한 공공 게놈 정보저장소인 진뱅크(GenBank)에도 자료를 올려 전 세계 연구자들이 연구자료로 삼을 수 있도록 했다.

그 사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우한에서 1월3일부터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 간 전염 현상은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불안 여론 잠재우기에 한창이었다. 그러나 전염병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법은 정보의 투명성 공개라는 게 몇 차례 검증된 바였다.

장 교수 연구팀이 신종 코로나 게놈 서열을 공개하고 몇 시간 뒤, 그제야 중국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장 교수 연구자료를 세계보건기구(WHO)와 공유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구석이 포착됐다. SCMP에 따르면, 이 자료는 장 교수팀이나 상하이 공공위생 임상센터가 아닌 중국과학원 산하 우한바이러스연구소를 통해 WHO에 보내졌다고 전했다.

본지에포크타임스는 과거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실질적 지배자가 장쩌민(江澤民·93) 전 주석의 장남인 장몐헝(江綿恒·68)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연구소는 중국의 바이오산업, 생물무기 개발 등과 관련된 연구사업을 독식하다시피 수주하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39세의 젊은 나이로 연구소를 이끄는 ‘미녀소장’ 왕옌이(王延) 소장은 꼭두각시였고 그녀의 남편인 수훙빙(舒紅兵·53)이 모든 걸 휘둘렀다. 수훙빙은 장몐헝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좌]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왕옌이(王延·39) 소장 [우]수훙빙(舒紅兵·53) 중국과학원 원사 | 중국 뉴스화면 캡처

장 교수 연구팀의 재난은 공로를 도둑맞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연구결과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다음날인 12일 장 교수가 소속된 상하이 공공위생 임상센터의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이 폐쇄됐다. 장 교수와 연구팀이 근무하던 바로 그 실험실이었다. ‘교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 실험실은 지난 1월5일 국가 정기검사를 통과했고, 1월24일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연구 허가까지 받은 상태였다. 센터 측에서는 폐쇄를 결정한 상하이 위생건강위원회에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가 됐는지 보건당국에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SCMP는 전했다.

센터 관계자는 “연구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확산 통제수단을 찾기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실험실 폐쇄로 연구에 큰 영향이 있었다”고 했다.

실험실 폐쇄는 중국 내 다른 연구자들에 대한 하나의 경고로도 해석됐다. 당국의 허가나 사전승인 없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연구결과를 알리거나 공개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정권의 안위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공산주의 시스템이 또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바이러스 확산 | 그래픽=픽사베이

장 교수팀은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에도 게놈 서열 분석에 관한 논문을 보냈었다. 이달 3일 발간된 네이처에 실린 장 교수팀 논문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금까지 발견된 바이러스 가운데, 저우산(舟山, 저장상 앞바다의 섬) 박쥐에게서 발견된 바이러스 샘플(번호 CoVZC 45과 CoVZXC21)과 가장 유사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스정리(石正麗) 박사팀 논문도 네이처에 실렸다. 스정리 박사팀 논문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2013년 발견된 윈난(雲南) 박쥐의 똥에서 발견된 바이러스(RaTG13)와 유사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두 연구소에서 연구결과가 엇갈린 점에 대해서는 하나의 의혹이 제기된다. 장 교수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가장 가깝다고 한 저우산 박쥐 바이러스 샘플은 2018년 인민해방군 연구소에서 채집해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인민해방군과의 연관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한편, 홍콩대학 미생물학과 감염증 전공 위안궈융(袁國勇) 교수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저우산 박쥐에서 발견된 SARS 바이러스와 가장 가깝다고 보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 가지 연구가 진행 중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지, 사태 초기 확산방지를 위해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한 학자의 목소리가 ‘괘씸죄’로 매몰되면서 세계인의 방역 골든타임을 희생시킨 일은 잊혀져선 안될 일이다.